성격 = 자기 자신
맞는 말일까?
꼭 이러한 등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많은 순간(혹은 거의 대부분) 우리는 이 등식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소개하는 기회가 될 때 자신의 성격적인 부분을 상당부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내 성격이 내 모든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런 분에게(저를 포함하여) '에니어그램의 지혜(돈 리처드 리소&러스 허드슨 저)'의 내용 중 아래 인용글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p. 45~50)
에니어그램이 제공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우리가 우리의 성격은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자신이 자신의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가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성격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영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스스로를 성격과 동일화하기를 멈추고 자신의 성격을 방어하기를 멈출 때 기적이 일어난다. 우리의 본질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우리를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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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신을 성격과 동일시하지 않는다면, 성격은 우리 전체의 작은 부분이 된다. 성격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지성과 감성이 더 활발하게 작용하여 성격 아래에 있는 진정한 우리의 존재가 발현됨으로써 성격에 끌려 다니기보다는 성격을 삶의 유용한 도구로 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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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욕망은 모든 인간이 당연하게 갖고 있는 욕구를 나타낸다. 그러나 각 유형은 그 유형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욕망을 이상화하고 그것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가져야할 다른 인간적인 욕구는 무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의 기본적인 욕망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을 패배시키는 잘못된 방식으로 기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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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성격은 부러진 팔이나 다리를 보호하기 위한 깁스 같은 것이다. 원래 부상이 클수록 깁스도 더 단단하다. 물론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완전한 기능을 되찾는 데는 깁스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깁스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팔이나 다리를 사용할 때 크게 제한받을 것이며 더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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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성격을 '깁스에 비유한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성격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격 속에 갖혀 산다면, 저자의 말대로 더 이상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겠지요.
아마 깁스를 해보신 분이라면, 깁스를 하지 않은 곳에 비해 살이 빠지고 근육이 약화된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깁스를 하게 되면 한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을 다시 쓰는 연습인 재활운동을 해야만 정상의 활동이 가능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성격과 자신을 분리하는 동안에는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때문이거나, 성격과 분리되는 것을 막는 에고의 방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자기 성장을 돕는 필수 과정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풍요로운 삶으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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