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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옥성호 지음/ 부흥과 개혁사)'를 읽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 - 제임스 패커 지음 (2)
하나님을 아는 지식 - 제임스 패커 지음 (1)
소명 - 오스 기니스 (2) - 재능과 욕망 사이
모차르트에 대한 살리에르의 질투에 대한 이야기는 모차르트를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는 이야기일듯.
내 안에도 무시못할 크기로 자라나는 '질투'에 대한 문제를 참으로 명료하게 다룬 챕터다.
(이하 본문 내용 중 일부)
모차르트.
200년이 지난 지금 모차르트란 이름이 천재와 동의어로, 또 지극한 음악적 환희와 유사어로 여겨지는 시점에서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어떻게 그처럼 창조적인 재능을 지닌 인물이 그렇게도 인정받지 못할 수 있었을까? 사랑과 호의를 거절당한 상실감이 그의 죽음을 재촉했고 그 죽음과 더불어 미처 태어나지 못한 수많은 작품이 사장된 것은 아닐까? 모차르트의 실제 인생과 각색된 인생에는 모두 통렬하고 비극적인 차원이 있는데, 이는 소명의 또 다른 측면을 밝히 보여 준다. 소명의 진리는 재능과 욕망과 거의 불가피한 질투의 유혹 사이의 연계성을 깊이 다루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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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독특성은 그 죄를 짓는 자가 그것을 결코 즐기지 못하며, 고백하는 경우가 거의 드문 유일한 죄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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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경쟁이 예증하듯이 소명이 질투에 약한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질투는 우리의 재능과 깊은 욕구가 우리의 소명 의식과 얽혀진 곳에 침투한다. 우리 자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재능뿐 아니라 우리가 성취하기를 갈구하는 깊은 욕구를 알아야 한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욕구가 그저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는 것이 아닌 이유는 우리에게는 의식적으로 갖는 선한 욕구와 함께 의식하지 못하는 저급한 욕구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질투는 경쟁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소명을 타락시킨다...자존심은 경쟁적이고 질투는 자존심이 경쟁에서 상처입은 결과다.
셋째, 질투는 소명을 공격한다. 그 이유는 소명은 직접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데 비해 질투는 본질적으로 불경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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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드는 다른 누군가의 성공이 그 사람의 소명에 기인한 것이라면, 나의 불만은 그저 상대방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에게 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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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한 사람씩 부르신다. 비교는 부질없는 짓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억측은 시간 낭비이며, 질투는 어리석은 죄악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부름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책임이 있으며, 그분만을 기쁘시게 해야 하며, 결국에는 그분으로부터만 인정받게 되어 있다. 우리가 혹시라도 유혹을 받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서로를 비교하면서 남의 빈보를 우리 자신의 소명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한다면 주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 역시 듣게 될 것이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나를 따르라!"
p. 204~211
소명 - 오스 기니스 (1) - 우리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
'코칭' 관련 책을 먼저 들었다가 얼마전 후배에게 빌려놓은 책에 먼저 눈이 가서 천천히 정독하는 중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는...
이런 고민은 사춘기때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때는 꽤나 진지하게 고민했던 문제들을 막상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때에는 오히려 생각을 안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혹은 그런 고민들이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해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이 시대의 치열함 때문일까?
아니면, 골치 아프기 싫어서 그런 치열함 속에 일부러 숨는 것일까?
혹은 대면하기엔 자신이 없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건간에 인생의 기로에서 결국은 대면해야할 이 근본적인 문제에 매우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 현대인들은 한결같이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뭔가 변화를 도모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좋은 유산을 남기기 원한다. 랄프 에머슨의 말처럼 우리는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떠나고”싶어한다. 우리네 가슴속에는 우리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유, 곧 존재 목적을 성취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우리 속에 있는 이 깊은 갈망이 충족되지 않는 한 다른 모든 성공의 척도-부, 권력, 지위, 친구 관계 등-는 하찮고도 허무한 것이 되고 만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공허감이 헨리 소로우가 묘사한 ‘조용한 자포자기의 인생’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 공허감과 무목적성이 더 큰 절망의 심연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도스도예프스키가 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초고에서는 인간이 그 존재 목적에 대해 회의할 때 영혼에 어떤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종교 재판소장이 묘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저 생존하는 것뿐 아니라…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확고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삶을 수용할 수 없고 지구상에 살아 남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최고의 선, 궁극적인 목적, 인생의 의미 등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하지만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문제는 우리 인생의 모든 계절에 걸쳐 무수한 모습으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p. 7-9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